학술을 다루는 책의 어떤 흐름
학술 분야의 대중서가 지니는 뚜렷한 특징이 하나 있다. 최근 들어 등장하는 많은 학술 대중서를 보면, 일가를 이룬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책에 집대성하면서 동시에 절반쯤 자서전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책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개인사가 중요한 학술적인 성취를 엿보는 창이 되기도 한다. 이런 말랑말랑한 학술서가 딱딱한 교과서 혹은 본격 학술서에 비해 재미 있고 접근성도 좋다. 이런 포맷의 ’시초’라고 할 만한 “괴짜 경제학”의 엄청난 성공 때문일까도 싶다.
그런데 나는 이런 형식이 이제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책이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교과서나 솔직한 학술서를 읽으면 주요 개념 한두 개쯤은 챙겨갈 수 있는데, 이런 책은 도통 ’재미있더라’는 인상 빼고는 챙길 게 없더라.
존 리스트의 “볼티지 효과”
존 리스트의 “스케일의 법칙”도 이러한 흐름에 속하는 책이다. 저자는 상아탑 경제학자로서는 드물게 기업의 현장 그것도 떠오르는 스타트업에 뛰어들어 ’규모의 경제’를 설계하는 일에 참여했다. 리스트 교수는 최근 노벨 경제학상 후보의 앞자리에 항상 오를 만큼 경제학계의 업적도 탄탄한 인물이다.
나는 우버와 리프트에서 겪은 사업의 경험을 보다 내밀하게 “규모의 경제” 혹은 “네트워크 효과”와 연결하는 내용을 기대했다. 규모의 경제를 다루는 많은 책이 있지만, 본질을 솔직하게 제대로 치고 나가는 책이 생각보다 드물다. Varian & Shapiro가 20년 전에 썼던 책이 여전히 메력이라고 생각하기에 보다 갱신된 내용이 경제학적으로 잘 다뤄졌으면 싶었다.
Information Rules; 이 책은 번역 출간되었으나, 현재는 절판 상태이다.
기대와는 달랐다…
이 책은 관련된 경제학을 꼼꼼히 다루는 대신 자기계발서와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론 혹은 실험 결과를 상세하기 소개하기보다는 그 논리와 결과를 밑밥으로 깔면서 비즈니스 혹은 삶의 교훈을 끌어내는 식이다.
1부에서는 규모의 확장을 가로막는 5가지 장애물을 소개한다. 행동 경제학, 실험 경제학, 인과 추론, 재현성의 위기 등의 학술 논쟁에서 다뤄진 내용이 적당히 버무려져서 소개된다. 2부는 규모 확장을 위해 필요한 경제학의 도구를 소개한다. 인센티브, 한계적 사고(marginal thinking),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에 기반한 포기 시점의 판단, 문화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다.
나는 2부가 더 실망스러웠다. 우선 리스트 교수의 가르침이라는 게 ’경제학 101’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면 좋은 가르침을 여러 영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지 모르겠다. 새롭다고 인지되는 현상을 먼저 잘 포획하고 이를 기존 경제학의 가르침으로 끌고 오는 방식이면 어땠을까 싶다. 저자가 이런 접근을 취하고 있지는 않더라.
저자의 개인사와 관련된 에피소드 역시 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크게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일까 싶다. 우버의 부상 및 추락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대목이 더 있었을 듯 싶다. 저자가 경험한 회사 생활이 그 정도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감추려고 그랬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더라.
최후의 일언
일반적인 경제학의 가르침이 규모 확장(scalability)에도 핵심이라면 굳이 ‘규모’(볼티지)라는 대목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 책에 던지는 나의 근본 질문 혹은 회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