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구조
렌조 미키히코의 “백광”은 완벽한 추리 소설이다. 이 작품은 추리 소설이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들을 잘 담고 있다. 소설은 인물 간의 복잡한 관계 설정, 갈등의 핵심을 이루는 서사의 반복과 변주, 그리고 반복되는 반전에도 무너지지 않는 극의 설득력을 보유하고 있다.
“백광”은 나오코라는 네 살짜리 여자 아이가 이모의 집에서 살해당하고 집 앞마당에 매장되는 사건을 둘러싼, 가족으로 엮인 7명의 고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은 7명의 관점에서 각각 같은 사건이 서술되고 해석된다. 각 인물이 제시하는 파편적 증거에 기반한 추측과 추리가 번갈아 나타난다. 이런 구조 덕분에 ’누가 범인인가’라는 추리 소설의 근본적인 질문이 계속해서 부각된다.
전지적 또는 관찰자 시점의 탐정이나 경찰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추리’는 거의 소설 끝까지 불완전한 채 남는다. 각자의 독백을 읽게 되면 이것이 진실일까, 아니면 거짓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맴돈다. 작가는 이런 뒷맛을 의도했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 “라쇼몽”을 보는 듯한 기분이 종종 드는 것은 소설의 이러한 독특한 서술 구조 덕분이다.
독자만 알 수 있다!
치매를 앓는 듯한 시아버지의 독백이 소설을 열고 닫는다. 세대와 인물을 넘나들며 반복된 살인, 배신 그리고 각자의 후회와 증오가 소설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 각 장을 채우는 인물의 말투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그 장의 마지막에 의표를 찌르듯 종종 등장하는 ’…하지만 OO은 범인이 아니다’의 구절은 반전을 앞세운 TV 연속극인가 싶기도 하다.
“백광”에는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클리셰, 즉 뛰어난 지략의 탐정, 초월적인 범죄자 혹은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경찰 등이 없다. 소설의 사건 앞에서 모두가 범인이면서 동시에 모두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 각자 진실의 일부를 알고 있지만 진실의 조각으로는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 7인의 독백과 대화를 모두 읽은 독자만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 대목이 소설 “백광”의 가장 근사한 트릭이 아닐까?